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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정책 및 이슈
사회복지관 종사자 및 전문가의 지식 및 현장 경험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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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으로 출근하는 문화기획자

 

  나는 문화기획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지관으로 출근하는 문화기획자. 20여년간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해 오다가 우연한 기회에 복지관이라는 공간에서 일을 할 기회가 생겼고 이제 출근한 지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간단히 소감을 말하라고 한다면 재미도 있고, 힘들기도 하고 그렇다.’ 또 하나를 덧붙이자면 복지사라는 사람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게 된다. 저장강박 세대 청소하는 일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복지사들이 억척같이 일을 해 내는 것을 보고 혀를 내 두르기도 하였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각설하고.)

 

  일을 시작하고 약 6개월 정도가 지나서 복지관을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서 조금씩 친하게 인사하고 지내는 어르신들이 생기게 되었다. 어느 날 오전에 3층 강당으로 올라오신 분에게 꾸벅 인사를 했더니 이팀장님, 내가 여까지 오는데 계단을 몇 개나 올라야 하는지 아세요?” 하셔서 답을 못하고 머뭇머뭇했더니 “42개 아닙니꺼, 42그러고는 내 앞을 슥 지나쳐 가셨다. 복지관에서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계단이 몇 개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오후 내내 그 어머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42개라,,,, 퇴근하기 전에 1층으로 내려가서 계단을 오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개수를 세어 보았다. ‘하나, , , … 열다섯, 열여섯, … 마흔하나, 마흔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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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일을 할 때는 ‘OO할매합창단이라고 특정 동네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할머님들과 합창단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동네 시장에서 버스킹도 하고 타 지역에 있는 야외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독립기획자로 활동하던 2020년에는 새터민(탈북자)들과 함께 그들이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과 향기를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의 삶의 괘적 속에 존재했던 그러한 경험들은 모든 것이 내가 중심이었던 것 같다.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어르신들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부족했구나 라는 깨달음이 머리 속에서 스멀스멀 들고 일어났다. 마흔두개의 계단, 내가 그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나날이 몇 일간 계속되었다.

 

 

승강기가 설치될 복지관을 상상하며

 

  그러던 차에 내가 현재 복지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과 외부의 재원을 덧붙여 개관 30여년만에 승강기를 설치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설계 작업을 하는 건축업체와 미팅을 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해 줄 공무원과 전화 통화를 하고, 그리고 직원들이 생각하는 문제점 등은 뭐가 있는지 내부회의 등을 하면서 훌쩍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머릿속에서 계획을 세웠다 지웠다 반복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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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관으로 출근할 때마다 건물을 보면서 상상해 본다. 승강기가 설치된 모습을, 그리고 그 승강기를 이용하게 될 어르신들과 장애인 분들과 그리고 많은 지역 주민들을. 이 작업이 쉽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는 신축 건물에 승강기를 넣는 것이 아닌, 기존 약 30여년간 사용된 건물 중앙에 구멍을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 기존 사무실을 잠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고, 1층에 있는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용도로 변경을 해야 하는 등의 문제도 함께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해 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하는 이 고민의 양이나 노동보다 42개의 계단을 오르는 수고가 더 많을 것이고, 승강기를 이용하게 될 주민들의 기쁨의 크기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승강기가 설치되고 제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려면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설계 작업을 하고 입찰을 하고, 실제 공사를 하기까지. 작업이 빨리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모든 것이 내 맘 같지는 않다. 그래도 오늘 하루 필요한 일을 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결과물들이 내 앞에 놓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날들이 쌓이다 보면 우리네 이웃들이 복지관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희망해 본다. 마흔두개의 계단을 회상하며 웃게 될 날을 상상해 본다.

 

승강기 설치 계획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그 어머님을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님, 제가 꼭 여기에 승강기 설치할 겁니다!”, “아이고마, 고맙소. 말만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내가 다 고맙네” ‘어머니, 진짜로 할 겁니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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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만종합사회복지관 2024.11.15 10:19
    이용자와 지역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복지관을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이 도출되는 것 같습니다!
    담당자로서 이용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어떤 불편이 있는지, 어떻게 보완되면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승강기가 설치되면 이용자들이 편하게 복지관을 이용하시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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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종합사회복지관 2024.11.19 14:02
    주민의 이야기를 고민하면서 만들어가고 있는 결실에 감동이 있는것 같습니다.
    주민들에게 향한 관심이 이용자분들에게 더 나은 결실이 맺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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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을 읽고 복지관을 이용하는 분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집니다. 고충이 반영되어 보다 이용이 용이하고 쾌적한 시설로 변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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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화종합사회복지관 2024.12.03 16:09
    요즘 새롭게 지어지는 복지관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크게 그리고 너무 화려하게 건축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반대로 정말 필요한 것들이 없는 오래된 복지관의 상황속에서의 현장성 있는 고민들이 글로 표현되어 너무 공감이 되는것 같습니다. 조금 더 편리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복지 공간들이 만들어 진다면 이용하시는 분들이 더 행복해 지시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용길 관장